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f r a g m e n t s

[월간 로그] 2023년 4월

by surene 2023. 5. 1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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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게 4월은 벚꽃의 계절이었는데, 이제 벚꽃은 3월의 꽃이 되어버렸다. 학창 시절 동안 벚꽃의 꽃말은 ‘중간고사’였는데, 곧 ‘개학’이 되어버릴 것만 같다. 그나마 늦게 피었던 우리 동네 벚꽃도 며칠 내내 내리던 비에 눈 깜짝할 새 땅으로 흩어져 하얀 꽃길을 만들었다. 매해 일부러 시간을 내서 벚꽃을 구경하고 올해도 그랬지만, 언제나처럼 꿈에서 본 듯 아련하다. 여리여리한 벚꽃이 지고 나니 이제는 철쭉 같은 형형색색 화려한 꽃들이 눈과 코를 즐겁게 한다.
열심히 새 생명을 틔우는 자연을 만끽하며 나 또한 생명력을 얻는다. 4월 한 달, 나도 꽤나 열심히 살았다.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파릇파릇한 이파리처럼 봄이면 내 마음도 설레게 돋아났는데, 이제 그런 건 없다. 그 대신 내 마음을 한가득 차지하고 앉아 있는 건 불안. 때로는 나의 열심에 원동력이 되는 것도 같지만, 나는 그저 이 모든 불확실성이 사라지면 좋겠다. 어쩌면 이번 4월의 기록은 나의 일상 속에서 작게나마 그 불안덩어리를 잊게 해 준 것들에 대한 것일지도.

 


4월의 드라마

더 글로리

더글로리
더 글로리 [출처: 넷플릭스]

4월에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정말 많이 봤다.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때는 무조건이고, 아침에 준비할 때 밥 먹을 때 머리 식힐 때 자기 전에 틈틈이 봤더니 6편이나 봤더라. 모범형사, 나이트 에이전트, 카피캣 킬러, 더 글로리, 재벌집 막내아들, 수리남... 한 화가 끝나면 화면 한 구석에 '다음 화' 버튼을 띄우면서 "계속 볼 거지?"라고 꼬드기는 넷플릭스가 얄미우면서도 거부하고 빠져나오기가 정말 쉽지 않다. 시각적인 유혹에서라도 벗어나볼까 하고 기능을 끄자니 또 아쉽다. 어차피 몰아보기 하는 맛에 넷플릭스를 구독하는 것 아닌가?
6편 다 재미있게 봤지만, 어찌 되었건 올 상반기 드라마는 자타공인 <더 글로리>다. 3월에 시즌 2가 나왔고 바빠서 미루어두고 있는 동안에 참 힘들었다. 피곤해 쓰러져 있어도 넷플릭스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두더지마냥 불쑥불쑥 튀어 올라오는 걸 망치로 두들겨 처박아버리느라, 인터넷 기사고 지인들이고 어떻게든 나에게 스포를 하려는 위험 요소들로부터 나를 지켜내느라. 기특하게도 스포 한 줄 안 당하고 시즌 2를 시작할 수 있었다. 그리고 엄마와 함께 앉은자리에서 끝냈다.

꽤나 잔인하고 당황스러울 만큼 선정적이었지만, 통쾌했다. 스토리 자체는 매우 '미드'스러웠지만, 극적인 해피엔딩과 러브라인을 잊지 않아 K-드라마라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었다 푸흡-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배우들의 연기. 누구 하나 빠짐없이 훌륭했다. 심지어 신인 배우들이 많았는데도 그 흔한 연기력 논란 한번 없었고, 오히려 '소름 돋는 열연'이 내내 화제였다. 무엇보다 '학교 폭력'이라는 이슈를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점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칭찬받을 만하지 않을까.

 


4월의 전시

마우리치오 카텔란: We

마우리치오-카텔란
마우리치오 카텔란 <프랭크와 제이미> (2002) & <밤> (2021)

오랜만에 정말 재미있는 전시였다. 여러 SNS에서 워낙 화제였던지라 많이 기대했는데,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좋았다. 카텔란의 작품들은 아찔할 만큼 신선하고 (어쩌면 충격적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) 재치 있고 어떤 면에서는 통쾌하다.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이 뚜렷하고 작품의 표현성이 진하지만, 절대로 그것을 관객에게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.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더 큰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. 인스타그램을 돌아다니다 보면 흔히 볼 수 있었던 유명한 작품들보다도, 나는 위 두 작품이 가장 좋았다. 그 이유는 아래 포스트에서- 그러고 보니 이 전시 리뷰가 내 블로그의 소중한 첫 게시물이었다! (의미부여 왕)

 

[전시] 마우리치오 카텔란: WE @리움미술관 한남

[전시] 마우리치오 카텔란: WE 📍 장소: 리움미술관 (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55길 60-16) 📅 전시 기간: 2023.01.31.~07.16. 🕒 관람 시간: 10:00~18:00 (월요일 휴관) 🎟️ 티켓 가격: 무료 🪄 예약: 리움미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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4월의 빵

크레미엘 까눌레 & 아몬드 크로와상

크레미엘 까눌레 & 아몬드 크로와상

빵을 좋아하지만, 모든 빵을 좋아하진 않는다. 그렇지만 '소울 빵'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아주 많이 좋아하는 빵도 있다. 바로 까눌레와 크로와상. 까눌레는 대학원에 다닐 때 한참 푹 빠져서, 베이커리에 가면 꼭 사고 까눌레 맛집이라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사 먹었다. 지금까지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을 만큼 맛있었던 건 곤트란쉐리에 까눌레. 그러다 나답게 또 시들시들해져서 한동안 안 찾았었는데 크레미엘 까눌레를 입에 넣자마자 그때 그 맛이 생각났다! 겉은 바삭 달달하고, 속은 크리미 할 정도로 촉촉하면서 바닐라와 럼 향을 아주 풍부하게 담고 있다. 까눌레를 향한 나의 못말리는 obsession이 다시 시작될 것 같다.

나의 두 번째 소울 빵 크로와상과 처음 사랑에 빠진 건 중학교 2학년 독일에서였다. 호텔 레스토랑에서 크로와상을 누텔라와 함께 먹을 수 있었는데, 중2병이 걸렸던 나의 가시들을 누그러뜨릴 만큼 천상의 맛이었다. 사실 크로와상은 매우 흔한 빵이지만, 맛있는 크로와상은 흔치 않다. 크레미엘의 크로와상은 완벽했다. 그 어떤 크로와상보다 결이 잘 살아 있고 버터 풍미가 황홀할 정도고 입에서 사르르 녹을 만큼 촉촉하다. 여기에 아몬드는 고소함과 달달함까지 더한다. 가깝기만 하면 참새 방앗간 못 지나치듯 매일 들러 사 먹을 것 같다. 그러고 싶다.

 

[맛집] 크레미엘 / 소신 @양재

[베이커리] 크레미엘 📍 주소: 서울 서초구 양재천로 21길 3 🕒 영업 시간: 11:00~19:00 (수・목요일 휴무) 🚘 주차: 가능 🎖️ 별점: ⭐️⭐️⭐️⭐️⭐️ 4월 초 양재천에 벚꽃 구경하고 와서 생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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4월의 맛

클레오 후무스 & 모로칸 치킨

클레오 후무스 & 모로칸 프라이드 치킨

하나만 고를 수 없다. 절대. 둘 다 박수치면서 먹었다. 물론 인상도 한껏 찌푸리고서. 나의 소울 빵이 까눌레와 크로와상이라면, 나의 소울 푸드 중 하나는 후무스다. 클레오 후무스가 나의 후무스 첫 경험이었다. 그 이후 나는 또 여기저기 후무스를 찾아다녔지만, 늘 다시 클레오로 돌아왔다. 첫 경험이라서가 아니라, 정말로 (적어도 서울에서는) 제일 맛있다. 세 가지 딥을 주지만 고소한 후무스가 제일 좋다. 집에 쟁여두고 먹고 싶다. 왜 한국은 미국처럼 마트에서 후무스를 팔지 않을까? 흑흑

원래 클레오에서 후무스 말고 다른 메뉴에는 관심도 없었는데, 진짜 온 세상 사람들에게 다 추천하고 싶은 메뉴를 발견했다. 바로 모로칸 프라이드 치킨! 정말 literally 박수 치면서 먹었다. 내가 치킨을 시키자고 했을 때 "치킨..?"하고 미심쩍어하던 친구도 모로코 가서 살자고 했다 푸하하- 뿌듯하다 뿌듯해. 정말로 모로코의 치킨이 이렇다면 모로코 왜 당장 안 가?! 꽤나 매콤하고 짭짤하고 자극적이어서 와인 생각이 간절했다. 맥주보다 와인이다. 클레오 치킨 배달 안 되나요?

 

[맛집] 클레오 (몬드리안) @이태원 / 티노마드 @망원

[지중해식 / 와인] 클레오 (몬드리안) 📍 주소: 서울 용산구 장문로 23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 🕒 영업 시간: 06:30~22:00 (10:30~12:00, 15:00~17:30 breaktime) 🪄 예약: 캐치테이블, 네이버 예약 🚘 주차: 발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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4월의 도전

티스토리 블로그

티스토리-블로그

블로그를 시작했다, 드디어. 아주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지만 선뜻 시작할 용기와 시간을 내질 못했는데, 친한 오빠의 말 한마디가 도화선 같은 것이 되었다. 4월 1일에 개설했고, 4월 16일에 첫 게시물을 올렸고, 이 글은 20번째 글이다. 시작하고 보니 더 재미있다. 기록에 집착하는 나에게 또 하나의 기록장이 생겨서 매우 신난 상태다 히히:)

애드센스를 신청해 두었고 애드핏도 곧 신청해서 광고를 올릴 예정이긴 하지만, 결국 목적은 나를 위한 사적인 기록이다. 이 'f r a g m e n t s' 카테고리는 특히나 더. 오래오래 꾸준히 하고 싶다. 그렇다고 너무 빠지진 않았으면 하고. 나는 늘 활활 타올랐다가 금방 식어버려 탈이니까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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